하우스푸어 공포에 짓눌려있던 시절
10여년 전, 막 결혼하고 신혼집에서 살던 시절이었다. 월급을 아껴 종잣돈은 조금씩 모이는데, 그 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주식 투자도 했었지만 수익률은 신통찮았고, 무엇보다 전세 만기가 다가오는데 “집을 사야 하나, 전세로 버텨야 하나”라는 질문 앞에서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때가 2014~2015년 무렵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시절 부동산 시장 분위기는 지금과 정반대였다. “하우스푸어”라는 말이 심심찮게 뉴스에 나오던 시절이었다. 집을 사면 대출 이자에 짓눌려 평생 가난해진다는 공포가 사회 전체에 깔려 있었다. 직장 동기나 주변 사람들 중에도 집 사기를 권하는 이는 드물었고 나 역시 그랬다. 대학교 시절 당시 유행했었던 경제 팟캐스트를 즐겨 들었는데, 그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 책장에서 만난 인생의 전환점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 댁에 갔다가 거실 책장에서 책 한 권을 무심코 집어 들었다. 『부자들만 아는 부동산 아이큐』라는 책이었다. 특별한 기대 없이 펼쳤는데, 그 안에서 만난 개념 하나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그 개념은 레버리지와 인플레이션의 관계였다. 쉽게 풀면 이렇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그 빚은 ‘숫자’로 고정된다. 1억을 빌렸으면 빚은 그냥 1억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물가가 오르면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 10년 전의 1억과 지금의 1억은 무게가 다르다. 즉, 물가가 오르는 동안 내 빚의 ‘실질적인 무게’는 조금씩 가벼워진다.
— 빚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그 사이 집이라는 실물 자산의 가격은 물가를 따라 오르는 경향이 있고. 그동안 빚을 ‘공포’로만 봤던 나에게, 이 책은 빚을 ‘도구’로 보는 법을 알려줬다.
실전 발품의 기록, 1억 대출의 결단

물론 책 한 권 읽었다고 바로 확신이 선 것은 아니다. 여전히 두려움은 있었다. 그래도 아내와 주말마다 발품을 팔았다. 봉천역에서 서울대입구역 일대, 영등포, 인덕원, 평촌, 홍제동에서 녹번동까지. 가격이 닿는 동네는 거의 다 돌아다녔다. 그리고 2016년 초, 결국 1억이 넘는 대출을 받아 첫 집을 샀다. 하우스푸어 공포가 가시지 않은 시절에 1억 대출은 적지 않은 결심이었다. 솔직히 그때 마음은 ‘떼돈 벌자’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 보금자리 하나 마련하자, 집값이 내려가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정도였다.
우리집을 계약할 때 당시 부동산 중개사에서 들었던 집주인과 중개사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집주인은 그 집을 보유한지 5년이 넘었지만 이제 본전 겨우 넘겨서 파는 것이라고 하였다. 중개사 또한 이 동네는 집값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가격이 낮아 추가 하락 위험은 적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뒤 5년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다들 아실 거다. 부동산이 천 단위, 억 단위로 뛰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그 급등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이 글은 ‘내가 시장을 읽고 역행 투자해 성공했다’는 무용담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결과의 상당 부분은 운이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그 시절 가장 위험했던 건 집값이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 공포에 휩쓸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자체를 멈추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은 사면 위험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판단을 포기하거나 유예했고, 나도 그럴 뻔했다. 그런데 책에서 얻은 개념 하나가, 최소한 ‘내 상황에서 이게 맞나 틀리나’를 따져볼 용기를 줬다. 답을 준 게 아니라, 질문할 도구를 준 것이다.
그리고 이건 반드시 짚고 싶다. 레버리지는 양날의 검이다. 물가와 자산이 오를 때는 내 편이지만, 자산 가격이 빠지거나 금리가 치솟으면 정반대로 작동한다. 그러니 “대출 받아 집 사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나처럼 이제 막 종잣돈을 모으기 시작한 분께 딱 하나만 전하고 싶다. 빚이든 투자든, 남들의 공포나 환호에 휩쓸려 판단을 멈추지 말 것. 책 한 권이라도 좋으니 내 손에 ‘따져볼 도구’ 하나를 쥐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거면 충분하다.
※ 개인 경험을 나눈 글이며, 특정 투자나 대출을 권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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