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고르기에 쏟은 시간의 10분의 1만

종목은 수십 번 바꿨지만, 비율은 정한 적이 없었다

투자를 처음 배우던 무렵, 내 머릿속은 늘 ‘무엇을 살까’로 가득했다. 삼성전자냐 카카오냐, 어떤 ETF가 더 오를까. 증권사 리포트와 뉴스를 뒤지며 ‘정답 종목’을 찾아 헤맸다. 종목은 수십 번 갈아탔다. 그런데 정작 그 종목들을 어떤 비율로 섞을지는 한 번도 진지하게 따져본 적이 없었다. 주식이 70%인지 90%인지, 채권은 한 푼이라도 있는지 — 그건 사다 보니 정해진 결과였지, 내가 정한 게 아니었다.

그릇 이야기를 하며 미뤄 뒀던 본론

절세 계좌 이야기를 할 때마다 꺼냈던 책이 있다. 『마법의 연금 굴리기』다. 이 책이 내게 ‘그릇'(연금저축·IRP·ISA)을 알려줬다는 이야기는 앞서 여러 번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지나가듯 덧붙였었다 — 이 책의 진짜 본론은 그릇이 아니라고. 그 그릇에 무엇을 어떤 비율로 담을 것인가 — 자산배분과 리밸런싱. 이제 그 미뤄 둔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저자가 이걸 설득하는 방식은 구호가 아니라 백테스트였다. 과거 데이터를 길게 돌려, 주식 하나에 몰아넣은 포트폴리오와 주식·채권·금을 섞은 포트폴리오가 같은 폭락장을 어떻게 다르게 통과했는지를 숫자로 보여 줬다. 비율을 바꾸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눈으로 확인시키는 방식이었다. 개별 종목의 파도에 휩쓸리지 말고 비율부터 정해 두라는 그 한 줄이, 막연한 조언이 아니라 데이터로 다가온 이유였다.

자산배분의 무게를 숫자로 본 연구

책의 백테스트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됐다. 이게 그 책 한 권의 특수한 결과인지, 아니면 더 일반적인 사실인지가 궁금했다. 이 연구는 『마법의 연금 굴리기』에 나오지 않는다. 자산배분이 정말 그만한 무게인지 직접 찾아보다 만난, 자산배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고전이다.

1986년 Brinson, Hood, Beebower 세 사람이 발표한 「Determinants of Portfolio Performance」다. 이들이 미국 대형 연금펀드 91개를 10년간 분석한 결과, 개별 펀드의 수익률이 시간에 따라 출렁이는 정도를 결정한 것은 종목 선택도 매매 타이밍도 아니었다. 자산배분이 93.6%를 설명했다. 종목 선택과 매매 타이밍이 설명한 몫은 다 합쳐도 한 자릿수에 그쳤다.

한 가지는 정확히 짚어야 한다. 이 93.6%라는 숫자는 “수익률 자체”가 아니라 “수익률의 변동성”을 자산배분이 설명한다는 뜻이다. 흔히 과장돼 인용되는 대목이라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함의는 분명했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던 일(종목 고르기)이, 정작 내 계좌의 출렁임을 결정하는 데는 거의 기여하지 않고 있었다.

비율이 수익률을 결정하는 이유

자산배분이 왜 그렇게 힘이 센지는, 직접 굴려 보니 세 가지로 정리됐다.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자산을 섞으면 전체의 출렁임이 줄어든다. 주식이 빠질 때 채권이나 금이 받쳐 주면, 수익률은 크게 훼손되지 않으면서 변동성만 낮아진다. 투자의 세계에서 이걸 ‘공짜 점심’이라 부른다.

그 낮아진 변동성은 마음 편한 데서 끝나지 않는다. -30%를 견디지 못해 바닥에서 파는 사람은 많지만, -15%는 버틸 만하다. 자산배분은 결국 내 감정을 이기는 장치였다.

그리고 비율을 정해 두면 리밸런싱이라는 장치가 따라온다. 오른 자산을 덜어 내려간 자산을 채우는 일 — ‘고점 매도, 저점 매수’를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실행하는 규칙이다. 타이밍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비율만 원래대로 맞추면 된다.

종목 찾기를 멈추고, 비율부터 정했다

그래서 순서를 바꿨다. 종목을 한 개 더 찾는 대신, 내 자산을 주식·채권·금·달러로 어떻게 나눌지부터 정했다. 널리 알려진 모델 셋 — 60/40, 올웨더, 코어-새틀라이트 — 을 공부했지만, 어느 하나를 그대로 베끼지는 않았다. 그 골격을 빌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비율을 만들었다.

더 중요한 건 리밸런싱을 ‘기분’이 아니라 ‘규칙’으로 박은 것이다. 내 규칙은 두 가지다. 정기적으로 한 번 — 분기나 반기마다 날을 정해 비중을 점검한다. 그리고 어느 자산이 목표에서 크게 벗어났을 때 한 번 더 — 목표 금액 대비 10~15%쯤 괴리가 벌어지면 그때 손을 댄다. 그 사이 시장이 무섭게 오르내려도 트리거를 당기지 않는다. 환율이 어떻고 금리가 어떻다는 뉴스로 비중을 흔들지 않기로 한 것도 이 규칙 덕분이다. 단순한 규칙 하나가, 매일 흔들리던 손을 멈춰 세웠다.

화려하지 않다, 그래서 오래간다

자산배분은 자랑할 거리가 못 된다. “이번에 포트폴리오 비율을 바꿨어”라고 말해 봐야 아무도 관심 없다. 종목 하나를 맞혔을 때의 짜릿함도 없다.

정답인 모델은 없다. 흔히 ‘잠 잘 자는 포트폴리오’로 불리는 올웨더조차, 사실은 1980년대부터 2021년까지 이어진 40년 장기 금리 인하기라는 순풍의 산물이기도 하다. 국채 비중이 절반을 넘는 그 구성을 2022년 이후에 그대로 가져다 쓰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좋은 모델이라도 시대의 맥락을 함께 읽어야 한다. 내가 쓰는 비율도 내 상황에 맞춘 것일 뿐, 누구에게나 맞는 정답은 아니다.

결국 모델보다 중요한 건 질문 하나였다. “나는 하락장에서도 잠들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비율이라면, 그게 내게 맞는 자산배분이다.

오늘, 내 비율을 한 번 들여다보자

그래서 그때의 나 같은 분께 권하고 싶은 건 하나다. 오늘은 종목을 하나 더 찾지 말고, 내 자산이 지금 어떤 비율로 섞여 있는지 한 번 들여다보자. 주식이 몇 %이고 안전자산이 몇 %인지, 그게 내가 정한 비율인지 아니면 그냥 사다 보니 그렇게 된 결과인지. 그걸 확인하는 일이, 어떤 종목을 살지 고민하는 것보다 먼저다.

지난 절세 시리즈가 ‘어떤 그릇에 담을까’였다면, 이 글부터는 ‘그 그릇에 무엇을 어떤 비율로 담을까’에 대한 이야기다. 그 조각들을 앞으로 하나씩 더 풀어 보려 한다.

※ 개인 경험을 나눈 글이며, 특정 상품이나 투자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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