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코스피가 6.24% 올라 7,284.41로 마감했다. 지난 월요일 8.95% 폭락으로 7,000선이 무너져 6,800대까지 밀렸던 지수가 3거래일 만에 7,000선을 되찾았다. 월요일의 공포, 화요일의 8%포인트에 가까운 널뛰기, 그리고 오늘의 급반등. 사흘 사이에 시장의 표정이 완전히 바뀌었고, 내 계좌도 손실의 일부를 회복했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 적어두고 싶은, 투자 위험 관리의 질문이 하나 있다. 지난 월요일의 그 폭락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위험은 아무도 위험을 말하지 않을 때 자란다
어제 글에서도 꺼낸 책인데, 이틀 연속 같은 책을 펴게 됐다. 하워드 막스의 『투자에 대한 생각』이다. 다만 보는 대목이 다르다. 어제 본 것이 변동성과 위험은 다르다는 구분이었다면, 오늘 볼 것은 위험이 만들어지는 시점에 대한 막스의 통찰이다.
막스는 위험이 가장 큰 순간은 모두가 위험을 말할 때가 아니라 아무도 위험을 말하지 않을 때라고 지적한다. 모두가 위험하다고 느끼면 가격이 눌려 있어서 실제 위험은 작고, 아무도 위험을 느끼지 않으면 낙관이 가격을 끝까지 밀어올려서 실제 위험은 가장 크다는 것이다. 위험은 폭락하는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편안한 상승장에서 조용히 축적된다.
이 관점으로 지난 석 달을 다시 보면, 그림이 다르게 읽힌다.
2분기의 코스피는 위험이 축적되는 시기였다
코스피는 4월 초 5,330에서 출발해 6월 19일 장중 9,385.59까지 올랐다. 석 달이 안 되는 사이에 76% 상승이다. 그리고 그 옆에서 다른 숫자도 함께 올랐다. 신용거래융자 잔고, 그러니까 빚내서 주식을 산 돈의 잔액이 5월 말 38조 원을 넘어섰고, 6월 하순에 사상 최대 기록을 다시 썼다. 코스피 시장만 놓고 보면 신용잔고가 한 분기 만에 22조 원대에서 29조 원대로 불었다.
그 석 달 동안 시장에 위험하다는 말은 드물었다. 오르는 지수가 낙관을 만들고, 낙관이 빚을 부르고, 빚이 다시 지수를 밀어올렸다. 지금 돌아보면 그 구간이 위험이 제조되던 시간이었다. 어제 글에서 적었던 반대매매와 레버리지 청산, 그러니까 폭락일에 사람의 판단 없이 쏟아진 기계적 매도 물량은 전부 그 상승 구간에서 미리 만들어진 것들이다. 검은 월요일은 위험이 만들어진 날이 아니라, 상승장에서 쌓인 위험의 값이 청구된 날이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투자 위험 관리의 시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위험이 하락일에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폭락한 날 긴장하면 된다. 그런데 위험이 상승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정작 점검이 필요한 날은 계좌가 즐거운 날이다.
상승장에서 룰이 하는 일
나의 자산배분에서 리밸런싱 룰은 목표 비중과의 괴리로 움직인다. 지수가 급하게 오르면 주식 비중이 목표를 넘어서고, 룰은 넘친 만큼 덜어내라고 말한다. 오르는 자산을 파는 일이라 기분을 거스르는 행동이다.
나는 코스피가 목표 비중을 초과하여 트리거 괴리율 15%에 도달할 때마다 조금씩 차익실현을 했다. 그 후로 상승장은 조금 더 이어져 ‘괜히 팔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리스크를 덜어낸 덕분에 폭락장에서 훨씬 더 덤덤해질 수 있었다.
전에는 이 행동을 수익의 일부를 포기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상승장에서 비중을 덜어내는 것은 수익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위험이 제조되는 라인에서 내 몫을 미리 빼내는 일이다. 신용잔고가 기록을 갈아치우던 그 구간에, 룰은 나를 반대 방향으로 걷게 한다. 모두가 사는 동안 조금 덜어내고, 모두가 파는 동안 조금 채우는 것. 폭락일의 대응력은 폭락일에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이전 상승장에서의 이 걸음들에서 나온다는 걸, 이번 사흘이 보여줬다.
반등한 날의 감정
오늘의 급반등을 보면서 마음 한쪽에서 올라온 것은 안도보다는 놀라움이었다.
우연히도 어제 코스피 비중이 줄어든 만큼 리밸런싱을 통해 채워넣었는데 오늘 급등장을 보며 시스템에 따른 매수/매도 결정이 오히려 나보다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룰베이스 결정이 즉흥적인 매매를 막아준다는 걸 이번에 확인했다. 오늘의 급등장을 보며 잠시나마 추격 매수를 하고픈 유혹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겐 추가 수익보다는 앞으로 어떤 시장이 펼쳐지더라도 내가 대응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느꼈다. 대응 카드가 많을수록 유리한 게임을 할 수 있다.
오늘의 반등이 바닥 확인인지, 반등 뒤의 또 다른 하락이 올지 나는 모른다. 사흘 전에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다만 아는 것은 하나다. 공포가 안도로 바뀌는 속도만큼, 위험의 제조도 다시 시작된다는 것. 폭락의 기억은 생각보다 빨리 지워지고, 지워진 자리에 낙관이 다시 들어선다. 위험은 그 낙관 속에서 자란다. 지난 석 달이 그랬듯이.
그래서 이 글은 시장 전망이 아니다. 반등이 이어지든 꺾이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위험을 점검하는 시점뿐이다.
오늘의 한 가지
이 글의 논리대로라면 위험 제조가 재개되는 날은 다음 상승장이 아니라 오늘 같은 반등일이다. 그래서 오늘 확인할 것은 세 가지다. 내 주식 비중이 목표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시장의 신용잔고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는지. 위험은 폭락한 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서, 점검도 폭락한 날 하면 이미 늦다.
※ 개인 경험을 나눈 글이며, 특정 상품이나 투자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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