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장자의 이미지
부자를 상상하면 따라오는 물건들이 있다. 고급 시계, 맞춤 양복, 신형 수입차. 그런데 1996년 미국에서 백만장자 수백 명의 지갑을 실제로 열어 본 조사는 다른 그림을 내놨다. 절반은 평생 시계에 235달러를 넘게 써 본 적이 없었다. 절반은 가장 비싼 양복이 399달러 이하였고, 가장 최근에 산 차의 중앙값은 2만 4,800달러 — 당시 미국의 평범한 신차 구매자가 쓴 돈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었다.
부자처럼 보이는 사람과 부자인 사람이 다르다는 것. 『이웃집 백만장자』가 데이터로 보여 준 첫 번째 반전이 이것이었다. 나도 부자는 표가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온 쪽이었다.
설문 데이터에 기반한 조사였다
이 책은 재테크 고전 목록마다 빠지지 않아서 제목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여러 매체에서 거듭 언급되는 것을 듣다가, 평범한 사람들이 부자의 길로 들어서는 궤적이 실제로 어떤 모양인지 궁금해서 읽게 됐다. 내가 따라가려는 궤적도 그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집어 들고 나서 좋았던 건 결론보다 방법이었다. 두 저자(토머스 스탠리, 윌리엄 댄코)는 20년에 걸쳐 고소득·고자산 가구 1만 1천 명 이상에게 설문을 돌리고 백만장자 인터뷰를 5백 차례 넘게 진행했다. 책의 핵심이 된 설문에서는 부유한 동네 가구주들에게서 1,115부를 회수했는데, 그중 순자산 100만 달러를 넘는 가구는 385곳뿐이었다. 좋은 동네에 살고 좋은 차를 모는 사람 다수가 부자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부는 소득이나 소비로 보이는 게 아니라, 대차대조표에만 적혀 있었다.
당시 조사에서 백만장자의 약 80%는 물려받지 않고 당대에 부를 만든 1세대였다. 절반 이상은 상속을 1달러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공격과 수비
책이 내 머리에 남긴 개념은 하나다. 저자들은 돈 버는 능력을 공격, 절약과 예산과 계획을 수비라고 부른다. 고소득자는 많지만 대부분 공격만 잘하는 팀이라는 것, 그리고 부자를 만드는 쪽은 반대편이라는 것이다. 책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다. “부 축적의 주춧돌은 수비이고, 그 수비는 예산과 계획에 닻을 내리고 있어야 한다.”
숫자가 이 말을 뒷받침한다. 조사 속 백만장자들의 가구소득 중앙값은 13만 1천 달러 — 분명 고소득이지만, 상상 속 부자의 소득은 아니다. 그들을 갈라놓은 건 소득이 아니라 축적이었다. 평균적으로 자기 부의 7% 미만으로 1년을 살았고, 대부분이 소득의 15% 이상을 투자하고 있었다. 요컨대 부자는 많이 버는 사람이 아니라, 번 것과 쓰는 것 사이의 간격을 수십 년 유지한 사람이었다.
능력이라는 말은 타고나는 쪽에 가깝지만, 습관은 정하는 쪽에 가깝다. 이 책이 ‘부자는 습관의 문제’라고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가 한 일은 전부 수비였다
이 프레임으로 지난 글들을 돌아보면, 내가 몇 년에 걸쳐 한 일은 전부 수비 훈련이었다. 월급 — 공격력 — 은 내 마음대로 늘릴 수 없었다. 내가 바꿀 수 있었던 건 그다음이었다. 잠자던 연금 계좌를 깨워 세금 안 새는 그릇 네 개를 만든 것(4계좌 이야기), 그릇에 담을 비율을 정한 것(자산배분 이야기), 그 비율을 달력에 박힌 규칙으로 지키는 것(리밸런싱 이야기). 어느 것도 수익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기술이 아니다. 전부 새는 곳을 막고, 정한 것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책을 읽기 전의 나는 이걸 ‘수익률을 못 올리니 하는 차선책’ 정도로 여겼다. 책을 읽고 나서는 순서가 뒤집혔다. 이게 본편이었다.
이 책의 유명한 반론까지 읽어야 한다
이 책을 권할 때 함께 말해야 공정한 게 있다. 『행운에 속지 마라』의 나심 탈렙은 이 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요지는 두 가지다. 첫째, 조사는 부자가 된 사람만 봤다. 같은 습관으로 검소하게 살았지만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은 표본에 없다 — 생존편향이다. 둘째, 조사 대상들이 부자가 된 데는 1982년 이후 미국 자산시장의 유례없는 강세장이 깔려 있다. 1935년에 같은 조사를 했다면 결론이 달랐을 수 있다.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검소하면 반드시 부자가 된다’는 약속으로 읽지 않는다. 그 명제는 이 데이터로 증명되지 않는다. 이 책이 무너뜨리는 건 반대쪽 통념이다 — ‘많이 벌면 부자가 된다’는 것. 수비 없는 고소득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장면은 표본 안에 수없이 있었다. 덧붙이면 ‘백만장자 다수가 자수성가’라는 관찰 자체는 2018년의 후속 연구와 별도의 대규모 조사에서도 비슷한 비율(약 80%)로 다시 나왔다. 30년 된 미국 데이터라는 한계 위에서도, 소득이 아니라 축적을 보라는 관점은 남는다.
오늘의 한 가지 — 내 축적률 계산해 보기
그래서 예전의 나 같은 분께 권하는 건 통장 잔고 확인이 아니다. 이번 달 세후 소득에서 저축과 투자로 넘어간 돈의 비율 — 축적률 하나를 계산해 보자. 책 속 백만장자 대부분은 이 숫자가 15% 이상이었고 평균은 20%에 가까웠다. 책의 기준은 세전 소득이라, 세후로 계산한 내 숫자는 조금 후하게 나온다는 것만 기억해 두자. 지금 몇 %인지보다 중요한 건, 이 숫자를 아는 순간 시선이 소득에서 축적으로 옮겨 온다는 것이다. 부자는 표가 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숫자를 관리해 온 사람이었다.
다음 글은 운용 시리즈로 돌아간다. 정한 비율이 과거에 어떤 성적을 냈을지 숫자로 확인해 보는 백테스트 이야기다.
※ 개인 경험과 독서를 나눈 글이며, 특정 상품이나 투자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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