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상한 투자 포트폴리오가 과거 시장에서 어떤 성과를 기록했는지를 보려면 백테스트를 통해 검증하는 방법이 있다. 나 같은 경우, 포트폴리오 비중을 조정할 때 백테스트를 돌려보곤 한다. 현재 내 자산 비율을 과거 데이터에 넣어 돌려 보니, 2008년 금융위기 구간에서 마이너스 32%. 계좌가 3분의 1 날아가는 숫자를 눈으로 확인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이 글은 그 이상한 안도감에 대한 이야기다.
책이 남긴 숙제를 미뤄 왔었다
자산배분 이야기를 하며 여러 번 언급한 『마법의 연금 굴리기』에는 백테스트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백테스팅 — 내가 정한 자산 조합을 과거 데이터에 넣어 돌려 보는 방법이다. 책은 자산을 섞은 포트폴리오와 주식 한 자산에 쏠린 계좌를 나란히 놓고, 수익률 곡선보다 변동성과 하락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처음 읽을 때는 그 부분을 건너뛰었다. 비율을 정하고 리밸런싱 규칙까지 만들었으니 숙제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율을 정하고 나서도 질문 하나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 비율이 진짜 괜찮은 걸까. 그래서 직접 백테스트를 돌려보게 되었다.
백테스트가 답하는 질문은 하나다
백테스트는 “과거로 돌아가 내 비율로 투자했다면 어땠을까”를 계산하는 도구다. 숫자가 여럿 나오지만, 읽어야 할 것은 사실 두 개다.
CAGR(연평균 수익률)은 그 조합이 장기적으로 얼마나 벌었는지다. 다들 이것부터 본다. 나도 그랬다.
MDD(최대 낙폭)는 고점에서 저점까지 가장 크게 빠진 폭이다. 1억이 6천만 원이 되면 MDD는 마이너스 40%다. 그리고 백테스트의 진짜 질문은 이쪽에 있다 — “나는 이 하락을 견딜 수 있는가.” CAGR이 아무리 좋아도 중간의 하락을 못 견디고 팔면 그 수익률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비율을 18년 전으로 보내 봤다
무료 백테스트 사이트(Testfol.io)에 내 비율을 넣었다. 내 계좌들을 자산군으로 뭉뚱그리면 대략 주식 6할, 현금성 자산이 4분의 1, 나머지가 채권과 금이다. 이걸 미국 ETF 조합으로 근사해서, 2008년 여름부터 올해 여름까지 18년을 돌렸다. 리밸런싱은 연 1회로 단순화했다. 비교 상대는 같은 기간의 전세계 주식 100%다. 미리 밝혀 두면 달러 기준 근사라 환율 효과는 빠져 있다 — 원화로 환산하면 구간별 낙폭은 이보다 얕거나 깊었을 수 있다.
결과는 이랬다. 1,000만 원으로 시작했다면 내 조합은 3,400만 원대, 주식 100%는 4,600만 원 가까이. 연평균으로 7.0% 대 8.8%. 주식 100%가 더 벌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분산이 손해처럼 보인다.
그런데 하락 구간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주식 100%는 마이너스 50% — 사실상 반토막이 났고, 원금을 회복하는 데 2년 반이 걸렸다. 내 조합은 마이너스 32%, 회복까지 1년 반. 2020년 코로나 급락에서는 마이너스 34% 대 마이너스 20%. 2022년 긴축기에는 마이너스 26% 대 마이너스 19%였다.
내친김에 여러 계좌 가운데 미국 계좌 하나는 실제 구성 그대로도 돌려 봤다. 미국·선진국·신흥국으로 나눠 담은 주식과 성장주까지 40%, 장기국채·물가연동채·회사채 등 채권 18%, 금 6%, 블록체인 6%, 리츠 5%, 현금성 25%인 조합이다(도구의 종목 수 한도로 성장주 1할은 미국 주식에, 신흥국 채권 조각은 회사채에 합쳐 근사했다 — 실제 계좌 성적과는 그만큼 다를 수 있다). 이 계좌의 가장 어린 ETF가 2018년 상장이라 이번엔 8년 반짜리다. 결과의 결은 같았다. 계좌는 연 7.6%, 같은 기간 전세계 주식 100%는 연 10.7% — 역시 주식 쪽이 더 벌었다. 대신 2020년 코로나 급락은 마이너스 19%로, 주식 100%의 마이너스 34%보다 훨씬 얕게 지나갔다. 반대로 2022년 긴축기에는 장기채가 주식과 함께 무너지며 마이너스 24%까지 밀렸고 원금까지 2년 반 넘게 걸렸다. 분산이 항상 같은 두께로 지켜 주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숫자로 확인한 셈이다.
숫자를 보고 내린 판단은 한 줄이었다. 마이너스 32%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손실이다. 그 판단이 서는 순간, 서두에 적은 안도감의 정체도 분명해졌다. 내 비율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최악의 구간에서 내가 팔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크기 안에 있다는 걸 숫자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더 번 쪽이 아니라 버틸 쪽을 골랐다는 확인
백테스트를 돌리기 전의 나는 “주식 비중을 더 높였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계속 스스로에게 하곤 했다. 숫자를 보고 나서야 그 질문이 정리됐다. 주식 100%의 연 1.7%포인트 추가 수익은 공짜가 아니었다. 반토막과 2년 반의 물밑 생활이 가격표였다. 나는 그 가격을 지불할 자신이 없다. 2022년에 마이너스 20% 가까운 하락도 아프게 겪어 본 몸이라 안다.
주의할 점이 있다. 백테스트로 “가장 수익 좋은 조합”을 찾기 시작하면 이 도구는 흉기가 된다. 과거에 최고였던 조합이 미래에도 최고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시작 시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같은 조합의 성적도 크게 달라진다. 거래 비용과 세금도 빠져 있다. 백테스트는 최적의 답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정한 내 비율의 과거 행동을 확인하는 도구다. 순서가 바뀌면 안 된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 비율이 돌에 새겨진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시황에 따라 비율을 조금씩 손본다. 금리가 제로까지 내려가는 국면이나 물가가 치솟아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이 된 국면에서는, 장기 국채 비중을 낮추고 단기 금리 상품으로 갈아타는 식의 조정을 해 왔다. 리밸런싱 글에서 “뉴스로 비중을 흔들지 않는다”고 적은 것과 모순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제오늘의 금리 뉴스에 반응하는 매매와, 금리의 계절 자체가 바뀔 때 목표 비율을 손보는 드문 조정은 다른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비율을 손볼 때일수록, 바뀐 비율을 이번처럼 숫자로 다시 확인해 둘 생각이다. 이건 내 습관의 기록이지, 금리를 예측해 움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의 한 가지
내 계좌의 자산 비율을 백테스트에 한 번 넣어 보자. 그리고 수익률보다 MDD를 먼저 보자. 그 숫자 앞에서 “이만큼 빠져도 나는 팔지 않을 수 있나”를 자문해 보는 것 — 다음 하락장에서 나를 지키는 건 예측이 아니라 이 확인이다.
지난 글에서 비율을 정하는 이야기(자산배분)와 그 비율을 지키는 규칙(리밸런싱)을 적었다. 오늘 이야기는 그 비율을 숫자로 납득하는 마지막 단계다. 비율을 정하고, 규칙으로 지키고, 숫자로 납득한다 — 여기까지가 내가 종목 찾기를 멈추고 만든 시스템의 전부다. 다음에는 이 시스템을 60/40이나 올웨더 같은 이름난 배분들과 나란히 세워 볼 참이다.
이 글은 특정 상품의 매수·매도 권유가 아니라 개인의 경험을 기록한 것입니다. 백테스트 수치는 과거 데이터의 시뮬레이션 결과이며 미래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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